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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NOTE/국내여행 2014

[1박2일/경북/영주] #03 우리나라 사립교육기관의 첫 발자취, 영주 소수서원

 

 

 

 

#03 영주 소수서원

(2014.10.26.)

 

 

 

 

 

 

 

 

 위치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 전화번호 : 054-639-5852

 

 

 

 

영주에서의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선비촌과 소수서원에 갈 예정이다. 3시 45분에 서울행 버스를 타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다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씻고 나와서 10시에 영주여객에서 출발하는 27번 버스를 탔다.

약 50분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선비촌(선비촌 전 정류장이 소수서원). 근데 내려서 동선을 살펴보니 소수서원에 먼저 갔다가 선비촌으로 넘어오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다행히 죽계천 건너기 전에 있는 좁은 도로로 들어가니 장승들이 우릴 반겨주고, 소수서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나왔다. 소수서원으로 입장하려면 먼저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6개의 장승들과 "선비의 고장"이 새겨진 암석

 

 

 

 

 

 

담쟁이넝쿨도 붉게 물드는 매표소의 가을

 

매표 한번 하면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박물관 모두 입장 가능하다.

이용요금은,

 

성인 3,000원 (단체 2,5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단체 1,5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 800원)

 

* 청소년은 중학생, 고등학생. 군인은 하사관 이하의 제복을 입은 국군장병

* 어린이는 초등학생

* 단체는 30명 이상

 

 

 

조선왕조 건국 이래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백성의 교화와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여 한양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교육방식만으로는 지방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운영과정에서 관리 양성 기능이 강조되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것에 소홀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관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바로 서원의 건립이다. 이러한 서원의 시초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오늘 우리가 방문한 소수서원인 것이다.

'사액'이란 것은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의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곧 국가가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서원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향촌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소수'라는 이름은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으로, 이는 1457년(세조 3) 순흥에서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순흥부가 풍기군의 한 면으로 편입 강등되고 순흥향교가 폐지됨으로써 무너지게 된 학문을, 학교를 다시 세워 단절된 도학을 잇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비촌에서 소수서원으로 넘어가는 죽계교

 

우린 먼저 소수서원을 둘러보기 위해 죽계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키가 큰 소나무들과 단풍나무로 꾸며진 잔디밭이 나오고, 길을 따라 가면 화장실 옆의 소수서원 내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좌 애기사과

우 화백나무

 

입구로 들어가면 충효교육관과 사료전시관이 보이는데 그 앞의 마당에 분재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사진의 화백나무는 실제로 봤을 땐 잘 다듬어지고 풍성한 잎들이 주위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표현되지 않는다. 역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최고다.

 

 

 

 

 

 

회양목 줄기 표면의 갈라짐이 기괴하기도

 

기상천외한 모양으로 뻗은 분재를 보면 분재인의 인내가 엿보인다.

 

 

 

 

 

 

외문 쪽에서 바라본 소수서원

 

역시나 겹겹이 솟아오른 기와지붕은 좋다. 왼쪽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대문이 있는 건물은 문성공묘로 문성공 안향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옆 단풍나무의 옆 건물은 일신재 · 직방재로 교수가 묵은 숙소이다. 그 외에도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이 공부하며 기거한 학구재 · 지락재, 서책을 보관하던 장서각, 제수를 차리던 전사청 등이 있다.

 

 

서원 경내에서 빠져나와 죽계천 쪽으로 가면 취한대와 경자바위가 있다.

 

 

 

 

 

 

경자바위

 

경자바위란 말 그대로 바위에 '경敬'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의 사원인 백운동사원을 창건한 주세붕이 쓴 글씨이다. 이 '경'자는 성리학에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으로, 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에 새긴 '백운동'이란 글자가 있다.

 

 

 

 

 

취한대

 

퇴계 이황이 지었는데 공부에 지친 선비들이 잠시 쉬며 휴식하던 곳으로, 터만 남았었는데 근래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된 은행나무

 

소수서원 입구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두 은행나무 모두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 은행나무이다.

 

 

 

 

 

 

엄청난 굵기를 자랑하는 500년 은행나무

 

나무 껍질이 벗겨져 드러나  비바람을 맞으며 생긴 상처들이 기나긴 세월을 견뎌낸 훈장같이 느껴진다.

 

 

 

 

 

500년 은행나무에 촘촘히 달린 은행 열매

 

저 은행들이 떨어져 터지면서 풍길 그 냄새를 생각하면, 촘촘하게 매달린 은행들이 무섭기까지 하다.

 

 

 

 

 

 

서원 왼편에 있는 영귀봉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같다 하여 영귀봉이라 불리는데, 이 주변으로 수백년 된 적송이 장관이다. 소나무에게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라 불리기도 한다.

 

 

 

 

 

 

영귀봉 뒤편의 장관인 소나무 숲

 

길쭉길쭉하게 뻗은 멋진 소나무 숲은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취한대로 가는 길

 

돌계단과 그 주변에 쌓인 낙엽 그리고 단풍나무..이 구도가 이뻐서 오빠랑 나랑 한 컷씩! 근데 나 눈감았다ㅠㅠ

 

 

 

 

 

 

취한대 옆 징검다리

 

뷰가 너무 이쁘다. 마침 사람이 없어서 냉큼 셔터를 눌렀다.

 

 

 

 

 

두 팔 벌리고

 

오빠한테 찍어달라고 하고 달려갔는데 그 단새 양쪽에 아저씨, 아줌마가 한 분씩 뙇!

나 혼자 사진 찍기 심심할까봐 친구해주러 오셨나보다.

 

 

 

 

 

 

담쟁이넝쿨과 나무처럼

 

우리도 다들 제각각이지만 잘 어울려 살았음 좋겠다.

 

 

 

 

포스팅 하고 보니 소수서원의 '풍경' 사진이 주를 이루는구나.

그만큼 그 풍경이 너무 이뻤다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니겠어?

 

 

이제 바로 옆, 축제중인 선비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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