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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NOTE/국내여행 2014

[9일동안/두번째/경주] #08 신라의 미술에 대해 배워보자, 신라미술관

 

 

 

 

#08, 신라미술관

(2014.05.03)

 

 

 

#07에 이어 여덟번째도 국립경주박물관에 대한 포스팅이다.

일곱번째에는 천마총에 대해서만 다루었고, 이번부터는 그 외의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만난 신라의 천년 역사를 다룰 것이다.

 

제일 먼저 소개할 곳은 신라미술관이다.

이 전시관은 신라의 불교미술에 관한 전시품이 있는 불교미술실과 반가사유상, 국은기념실, 황룡사실로 구성되어 있다.

 

 

 

 

 

신라미술관에서 1층 전체가 불교미술실이다.

나는 여기서 평생 구경할 불상들을 다 구경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약사불

 

모든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준다는 부처이다.

왼손에 쥐고 있는 약단지가 약사불임을 나타내는데, 이 약단지를 빼면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 오른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인 항마촉지인,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 등이 석굴암 본존불과 닮은 것이다.

풍만하고 당당한 신체는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굴암 본존불과 닮았지만, 화려해진 광배는 9세기에 유행했던 것이기 때문에 8세기말 내지 9세기 초에 조성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방부처의 코와 귀

 

 

 

'서방불西方佛'이 새겨진 불상의 안쪽 면

 

이 파편들은 흙으로 불상의 형태를 만들고 신체의 각 부분을 나눈 뒤, 안쪽면에 신체 부위의 명칭을 새긴 후 불에 구워 다시 조립하여 완성했음을 보여준다.

 

 

 

 

사방부처의 오른발

 

 

 

위의 세 사진은 경주 낭산 서쪽의 능지탑으로 알려진 곳에서 출토된 소조불상의 파편들이다. 코의 파편 하나만 봐도 불상의 원래 크기가 어마어마 할 것이라 예상되듯이 이 불상의 온전한 형태는 높이 약 2.5m, 무릎 폭 약 1.7m, 깊이 약 1.4m의 크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소조불상은 통일신라의 가장 오래된 사방부처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7세기 후반에 이 정도 크기의 소조불상을 불에 구워 만든 세작기술은 중국과 일본에 현재 알려진 예가 없어 주목된다고 한다.

 

 

 

 

 

 

 

미륵삼존불 중 오른쪽 불상

 

어린아이같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4등신 길이가 귀여움ㅋㅋ

가운데 있는 불상은 의자에 앉아있는데 양쪽 불상보다 훨씬 크다.

 

 

 

 

 

 

이 길은 1998년 미술관 터 발굴에서 확인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실제로 사용하던 길이라고 한다.

타임인조선 이라는 웹툰을 요즘 보는 중인데, 거기서 주인공이 노스페이스 파카를 입고 저잣거리를 걸어다니는 장면이 떠오른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느낌..

 

 

 

 

 

좌 금동불입상

우 금동반가사유상

 

이렇게 미니미 불상도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금동반가사유상은 사색하는 부처 같음

 

 

 

 

 

 

이건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반가사유상 거대버전

경주 송화산에서 출토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불상의 머리와 두 팔이 없다. 머리가 없어도 현재 높이가 125cm인데 높은 곳에 올려져있어서 실제로 보면 더 커보인다.

발톱과 발가락까지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있고, 왼발을 받치고 있는 것은 연꽃으로 성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이 작품을 조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조각을 했을지, 그리고 없어진 머리는 원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불상이다.

 

 

 

 

 

 

경주 읍성에서 출토된 불상

 

우라나라 불상은 대게 화강암을 재료로 하는데 이 불상은 사암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재료가 다르다는 것은 불상을 조각한 장인집단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재료의 강약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나 조각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김새도 무척 다르다. 우선 얼굴만 보면, 좌우 폭보다 앞뒤 폭이 유난히 긴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마치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양 사람의 얼굴을 표현해놓은 듯하다.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불상은 인도 굽타Gupta 시대 마투라 지역의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에 와있던 인도 장인의 손에 만들어졌거나 인도에서 제작되어 배에 싣고 왔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경주 분황사에서 출토된 관음보살

 

분황사에 있던 상으로 사진에 확대한 부분을 보면 원래 머리와 몸체가 떨어져있던 것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보살상은 동그란 얼굴, 감은 듯 만 듯한 눈, 짧은 코, 좁은 어깨, 왜소한 신체, 대좌의 화려한 연꽃무늬 장식이 특징인데, 이러한 상을 관음보살이라 부른다. 보관寶冠에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고, 정병淨甁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관은 머리에 쓴 장식된 관을 말하고 정병은 원래 인도에서 승려가 여행을 할 때 밥그릇이나 의복과 함께 메고 다니던 물병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정병은 관음보살이 맑은 물과 버드나무 가지로 병든 사람을 고쳤다는 내용에서 유래하는데 물을 형상화 할 수 없으니 물을 담을 수 있는 정병으로 대체한 것이다. '자비의 화신'이라는 관음보살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정병을 든 모습의 관음보살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근데............이 관음보살상....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닮지않음!?

웹툰 타임인조선에 나오는 김철수철수라는 캐릭턴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뜨다만 듯한 눈에 좁은 어깨, 왜소한 신체.....................딱인데ㅋㅋㅋㅋ

특히나 뜨다만 듯한 눈!!!!!

뜬금없지만 타임인조선 재밌다. 흐흐.

 

 

 

 

이제 국은기념실이다.

이 기념실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곳은 어떤 한 사람이 평생동안 모은 귀중한 문화재 66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호가 바로 '국은'이고 성함은 이양선, 즉 국은 이양선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은 이양선 박사는 "문화재는 재화적인 가치로만 생각할 수 없으며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유산이다. 이를 영구히 보존, 연구하여 민족의 전통과 예지를 여기서 찾아내야 한다."라는 소신을 지니셨다. 그래서 그의 수집 기증품들은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 계통의 자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그의 집념은, 훗날 국보로 지정된 '말탄무사모양 뿔잔(기마인물형각배)'의 수집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선생은 완형도 아니었던 '말탄무사모양 뿔잔'을, 더 비싼 도자기를 주고 바꾸었다. 이는 선생이 이 문화재가 지닌 자료적 가치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문화재는 삼국시대 말탄무사와 말갖춤의 복원에 중요한 기준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 이것이 말탄무사모양 뿔잔(기마인물형각배)이다. 이 뿔잔을 보니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중 기마인물형 주자가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기마인물형 주자

 

 

말탄무사모양 뿔잔 내부가 비어있다고 하는데 기마인물형 주자도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내부가 비어있었다.

기마인물형 주자에 물을 담아 말탄무사모양 뿔잔에 그 물을 따라 먹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ㅋㅋ

말탄무사모양 뿔잔이 보통의 컵처럼 생기지 않아서 매치가 안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마제석검도 있고

 

 

 

 

 

 

도자기들도 있고

 

 

 

 

 

 

장신구들도 있다. 그 외에도 기와, 철로 된 신발, 동경 등 정말 다양한 문화재들이 많았다.

국은 이양선 선생은 이 많은 문화재들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라고 생각하니 문화재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구나 생각되고,

한평생 수집한 문화재들을 득실을 따지지 않고 박물관에 기증을 하는 면모를 보면 대인배임이 틀림없다 라고 생각된다.

 

국은 이양선 선생에게 당신 덕분에 우리의 문화재를 지킬 수 있었음에 고개 깊이 숙여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국은전시실과 같은 층에 있는 황룡사실이다.

 

 

 

황룡사 축소 재현판

 

황룡사 9층목탑은 그 높이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아파트 25층 높이가 약 75미터 정도 된다는데 황룡사 구층목탑은 약 80미터라고 한다.

아파트 25층 높이보다 더 높다니.....정말 실제로 보면 엄청났을 것 같은데..아쉽게도 몽고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황룡사 9층목탑의 9층은 신라를 둘러싼 9개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는다는 것을 뜻한다.

황룡사에서 나온 출토품은 총 4만 여 점 정도 된다고 한다.

 

 

 

 

 

 

각종 지진구(가위, 칼, 팔찌, 방울, 침통, 허리띠 장식 등)

 

 

 

 

 

 

구슬

 

 

 

 

 

 

 

다양한 모양이 새겨진 기와들

 

4만 여 점의 출토품 가운데 3만 여 점이 기와인데, 만든 시기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황룡사실을 끝으로 신라미술관에서 나왔다.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시품들 대부분에서 불교의 색깔이 묻어났다.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대들의 염원이 전시품들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럼 다음에 관람할 전시관은 신라역사관!!

(월지관은 사진 몇개 없으므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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